집필・편집 : 박주미
SNS에서 순식간에 정보가 확산되는 상황 속에서 국내뿐만 아니라 국가를 넘어서 퍼지는 소문과 ‘가짜뉴스’는 더러 심각한 사회 분단 현상을 가지고 온다.
지난 토론에서는 진위를 알 수 없는 정보가 범람하여 사람들을 혹하게 하는 허위조작정보를 둘러싼 아시아 각국의 사례와 정부의 대응, 사회의 대처 등을 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에 사는 회원들이 공유하고 토의했다.
그래서 이번에 ‘개인은 무엇을 믿으면 되는가’에 대해 동아시아의 평화학 연구자이신 김경묵 교수를 인터뷰했다.
김경묵 교수는 “인포데믹”에 혹하지 않고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수적 데이터에 의거한 정확성뿐만이 아니라고 언급하였다.
‘거짓을 간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럼 어떤 능력을 지니는 것이 좋을까?
구체적으로 물어보았다.
인포데믹 시대에서 정보를 다루는 법
김경묵 교수: 읽고 읽혀지는 수학적 정보와 수치 데이터는 오해의 소지가 있기 마련이고, 한편으로 쉽게 사람을 속일 수 있다.
신뢰 가능한 정부와 권위적인 조직도 숫자 뒤에 숨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 책임을 지지않아도 되고, 정보를 이용하여 여론을 조작하는 것도 이론 상 가능하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가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감각과 경험으로 ‘이상하다’는 육감적인 직관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선 아날로그적인 필드 (현장) 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디지털화된 사회이지만, 현실에서 아날로그의 공간이 가지는 가치는 지속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온라인이 새로운 표준이 된다면, 체험을 바탕으로 얻을 수 있는 현실적인 공간의 장점은 오히려 늘어날지도 모른다.
뉴질랜드의 학술회의에서 발표 중인 김경목 교수 / 본인 제공
탁상 공론으로 평화를 ‘계산하는 것’ 에 대한 위화감
김 교수: 나 또한 어떠한 시기까지는 계량 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정통 국제관계론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한솥밥을 먹고 지내는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관련 주체를 시뮬레이션을 통해 전쟁 촉발의 상황을 가정해서 가능성을 예측하는 냉전 이후 주류가 된 전통적인 안전보장을 전제로 한 학문이다.
나는 ‘파이 싸움’을 기초로 하여 다각적인 협력과 경쟁을 전략적으로 생각하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평화적 현실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전쟁 관리론’과 같은 발상과 이어지고, 수치화된 분석과 탁상 시뮬레이션에서 과연 평화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위화감을 느꼈다.
평화학은 애초에 국제정치학에서 독립하여 폭력 연구로 시작된 응용학문이다. ‘Why?’뿐만 아니라 ‘How?’, ‘What?’ 부분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수학적인 정보에 의존하는 것에는 측정하는 것엔 한계가 있다.
물론 과학적인 분석과 연구에도 각각의 의의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더욱 ‘Tangible’ (손에 잡히는) 평화에 관여하고 싶다고 생각하여 NGO (비정부 기구)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분쟁 현장에서 실제 경험을 통해 ‘현장주의자’가 되다
김 교수: 대학원수업에는 콧배기도 잘 안보이고 NGO (일본 국제 볼런티어센터)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1999년에 코소보 분쟁이 발생했다. 당시 일본 외무성은 NGO 전문조사원제도를 신규창설했는데 운 좋게 제1기 멤버로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 일본과 유럽, 미국사회에서 당연시 된 ‘세르비아 악당론(セルビア悪玉論)’과 학살론을 바탕으로 NATO가 78일동안 공습을 한 결과, 80만명 이상의 난민이 생기고, 수십 여명의 시민이 희생이 되었다.
이 NGO는 ‘악당’으로 불리우는 나라와 지역에서도 반드시 올바른 것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전제 하에 현장의 목소리를 찾아 시민이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되지 않기 위해 시민을 보호하는 활동을 했다. 사람의 목숨을 저울질하여 정의와 악을 판단하는 측면이 국제 정치에 있다는 모순을 분쟁 현장에 처음 방문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었다.
만30살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인도자원활동에 종사하는 기회가 있었다. 수많은 닭 중 한 마리를 골라 그 자리에서 닭을 손질하는 소년 등 현지 사람들과 교류하며 내 자신의 삶의 방식이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인가라고 생각하게 됐다. 일상 생활에서 ‘평화’를 손에 넣고, 스스로 식량을 조달하는 것이 불가능한 나는 도대체 어느 정도의 강인함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를 타고 있었을 때였다. 기내 닥터 콜에 유니세프 의사 등 국제기구 의료진들이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고 손을 들었다. 말이 같은 “닥터 (박사)”이지 내가 추구하던 박사 학위는 세상에 도움이 되지않는 것이 아닐까라는 망설임이 생겼다. 이것은 내 자신안에서의 극적인 사고의 변화로 이어져 박사논문 연구가 그 후에 순조롭게 진행되는 계기가 되었다.
‘연구자가 될 것인가, 활동가의 길을 택할 것인가’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안정을 제일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여태껏 박사 논문이 안써진다는 등 자질구레한 것만을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내가 스스로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발신하고 싶은 가라는, 사회 공헌을 축으로 한 선택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그 결과 “경계를 넘나드는 NGO 네트워크”라는 제목의 박사 논문이 탄생됐다.
커리어와 세상을 바꾸는 이미지의 시너지 효과
ーーー안정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공감이 간다. 특히 일본의 젊은 세대는 그런 사람이 많을 지도 모른다.
김 교수: 세상은 다양한 사람이 공존하고 있는 상황에 어떤 것이 좋고 정답인지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대학 교수로서 예견할 수 있는 미래에 안심하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는 것을 느낀다. 나는 커리어의 이미지와 세상을 바꾸는 이미지의 시너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독립하여 기업을 하거나 소셜비지니스 등을 하는 대견한 학생이 늘고 있는 한편으론, 어떤 것이든 돈으로 환원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가치를 전제로 한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에서는 효율을 요구하는 자세에 동의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효율을 요구함으로써 사물을 차분히 생각하여 언어화하는 자세가 평가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는 점에 위기감을 갖는다.
답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으로 사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사회를 만들면 단편적인 사고방식을 하게 된다.
평화는 주어진 상황과 결과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과정이다. 이상적인 평화상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며, 누군가의 평화는 반드시 다른 누군가에겐 평화라고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존재한다.
ーーー지금은 대학교수로서 교육의 영역에 있다. 어떻게 선택했는가?
연구자, 외교관, 국제공무원과 같은 진로도 생각했지만, 대학원에서 NGO와 관련된 활동을 하여 흥미를 갖게되었고, ‘현장형 평화주의자’로써 있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렇게 나의 ‘현장’으로써 매우 자유롭고, 연구하고 싶은 것을 연구하여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교수라는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현장’ 속에서 내가 살아온 환경에서 당연히 알고있던 것을 사회에 내보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내 경우엔 유럽이나 미국의 차별 구조를 다루기보단, 동아시아와 남북한 문제 등 아시아의 상황을 다루는 편이 더욱 그 배경과 문맥을 내 삶 속에서 느끼고 있기에 잘 알고있다.
<이상적평화주의>
‘기도하는 평화’와 ‘조용한 평화’라고 할 수 있다. 직접적인 평화 행동에 이어지지 않더라도 바람과 윤리관을 수반한다. 몽상주의라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바람이 원리와 사상의 시발점이 된다.
<현실적 평화주의>
‘만드는 평화’와 ‘움직이는 평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무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는 평화의 실현이라는 접근 그 자체가 모순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군대의 인도지원과 군사적 개입, 올바른 전쟁의 근거다. 한편으로 무력 분쟁과 혁명주의자도 스스로 평화 실현을 위해 싸움을 모색하는 것에 있어서 이러한 사상을 내건다.
<현장형 평화주의>
군과 국가권력, 반정부조직 등과 같은 현실주의적인 입장에도 적용되며, 비폭력, 비무장을 철저히 하는 인도주의 그룹과 평화활동가가 현장에서 행동한다면, 이상주의의 입장에도 적용된다. NGO와 군대 관계 없이 분쟁의 진원지와 현장에서 활동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저서: “경계를 넘나드는 평화학 : 아시아에 있어서의 공생과 화해” (법률문화사, 2019년) 인용)
아시아의 문맥에서 ‘평화’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화’
ーーー물리적으로 가깝지만 정치 문맥이나 역사, 문화, 사회가 다른 동아시아에서 ‘평화 구축’을 생각할 때 염두에 두어야하는 평화란 무엇일까.
김 교수: 평화를 생각하는데 있어서 몇가지 고려해야하는 것이 있다.
먼저 각자가 놓여진 시대나 장소의 맥락이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이야기하는 ‘평화’는 다르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사람과 팔레스타인의 사람이 각각 생각하는 ‘평화’는 다르다. 아시아라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들로부터 사람이 모일 때 이 점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타인의 불행을 토대로 성립된 평화를 목표로 한 프로세스는 절대로 평화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경험주의를 고려해야 한다. 사람은 모두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일에 대해 믿거나 판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평화’가 누군가의 경험과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인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ーーー각각 다른 체험을 바탕으로 ‘평화’를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조정할 필요성을 느낀다. 낙관적으로 보면 SNS에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시대에 서로 비슷한 체험을 할 수 있게 되면 ‘양보하는 평화’도 가능한 것은 아닐까.
김 교수: SNS는 자신만의 ‘동조 공간’에서 시작되어 끝나기 쉽고, 다른 의견을 배제하기 쉬운 측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공공권에서 열린 토론을 추구해야한다.
ーーー공포란 누구나 가지는 원시적인 본능이다. 그렇기에 ‘위협’을 가정하여 공포를 불러 일으키면 단결하기 쉽고 ‘공통의 체험’을 얻기 쉽다. 바이러스라는 인류 공통의 ‘적’이 사람들을 위협하는 지금, 인류가 단결하는 기회로 생각된다. 그런데, 왜 국민 국가 시스템 상에서 서로 대항하는 구조가 생기는 것인가.
김 교수: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운동이 펼쳐지는 상황에서 기회이기도, 위기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론, 미국과 유럽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이 1968년의 문맥에 가깝지는 아닌가를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각국의 문맥에서 다른 것처럼 보여도 실로 세계에는 공통 문제가 잠재하고 있고,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널리 퍼져 행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국가의 틀에서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상대 집단에 대한 ‘알 수 없다’는 불안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언어의 장벽이 있고, 아무리 국제 공통어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도, 역사적, 사회적인 문맥과 배경이 다르면 서로 맞지않을 수 있다.
얼마나 정보를 교환한다고 하더라도, 언어의 뒤에 숨겨진 문화권, 규칙, 가치관 등은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공감’은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과제이지만, 해결방법은 대화밖에 없다. 젊은 세대가 쌓아 올린 대화가 만들어가는 장래의 ‘공감’을 기대한다.
김경묵
도쿄대학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박사과정 수료. 박사 (학술: 도쿄대학, 2006년). 1999년~2002년에 일본 국제 봉사 센터 (JVC)에서 조사연구를 담당. 2005년~2015년 주쿄대학 국제교양학부 교수를 지내고 현재 와세다대학 재직 중. 2008년부터 수년간 일본 국제 볼런티어 센터 이사를 역임했다. 저서로 ‘경계를 넘나드는 NGO 트워크’ (아카시 서점, 2008년), 공동 편저서로 ‘국제협력 NGO의 프론티어’ (아카시 서점, 2007년), 그 외 다수.